세계최초병에 걸린 나라.

‘세계최고’도 아니고 ‘세계최초’는 사실 한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개념이다. 물론 세계최초라는 말은 우리가 세계최초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세계최초라는 그 말을 누가 세계최초로 썼는지는 모르지만, 여느 나라나 같은 뜻의 말은 있다. 그러나 세계최초를 이다지도 사랑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세계최초다. 이게 얼마나 병이냐면, 일본서는 한국이 이 ‘세계최초’를 남발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인을 ‘세계최초의 한국인’이라고 놀려먹는 레파토리로 쓸 정도다. 이를 테면, 어느 한국인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는 기사가 뜨면 ‘세계최초로 김아무개 씨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네’라며 조롱하는 식이다. 물론 이 세계최초 드립은 혐한의 일종이라 그리 메이져한 비하는 아니다. 그러나 이 레파토리가 일본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로도 퍼져나가는 모양새로 미루어 한국인의 세계최초 사랑은 정말 유별나기는 하는 모양이다.

이걸 단순히 ‘세계최초의 나라’ 한국을 놀려먹는 코드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한국이 세계최초 병에 걸린 나라라고 놀림 받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의 연구자나 학자가 무언가 새로운 발견을 했다면 한국 뉴스는 반드시 그 앞에 세계최초를 붙인다. ‘국내 연구팀, 세계최초로 신소재 개발’, ‘국내 모 회사, 세계최초로 차세대 통신 기술 도입’, 하는 식으로. 이렇게까지 세계최초를 미디어에서 남발하는 현상은 해외에서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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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광고를 세계최초로 했을 LG전자.

심지어는 ‘세계최초 한/중/일 공동 제작 드라마, 방송 확정’이라는 기사 제목도 뽑힌다. 솔직히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세계최초로 한/중/일 공동 제작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 한/중/일 공동 제작 드라마를 세계최초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중/일 셋뿐인데 그러려면 어차피 셋이서 공동 제작을 해야만 하니 참 아무데나 세계최초 가져다 붙인다 싶다. 이 따위 기사야말로 아마도 세계최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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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저는 세계최초로 이 기사를 aeoraji.com에 올렸습니다.

사실 이런 세계최초에 대한 집착은 한국이 세계최초인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까지의 미국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세계최초병 환자였다. 클라이드 톰보우가 세계최초로 명왕성을 발견했을 때, 미국의 미디어는 ‘세계최초로 아홉 번 째 행성 발견’했다며 이라며 침 튀기며 자랑을 했었다. 물론 9번째 행성을 발견했으면 그건 당연히 세계최초지, 세계 두 번째로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놈의 세계최초 타령을 구태여 국가 단위로 했다는 건 참 쪽 팔리는 일이다. 에디슨이 온갖 세계최초 발명품을 선보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미국의 신문은 지면 절반을 ‘세계최초’라는 단어를 위해 할애했다. 한편, 떠오르는 세계최초병 환자 중국은 세계최초로 10자리 수 인구를 찍은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온갖 역사적 기원을 자기네 세계최초로 퉁치고 있다. 쌀도, 숫자도, 축구도, 로켓도, 비행기도, 인쇄기술도 다 자기네들이 세계최초란다. 뭐어, 세계최초가 맞는 것도 있겠지만 쌀은 솔직히 좀 너무하지 싶다. 그리고 축구는 잉글랜드 세계최초 아닌가?

아무튼 얘기를 한국으로 돌리자면, 이 한국인의 세계최초 사랑은 특유의 경쟁주의사회와 엮여있다는 점이 참으로 애처로운 것이다. 무한경쟁에 완벽하게 적응한 한민족은 알게 모르게 세계최초를 추구하고 세계최초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나만해도 고등학생 무렵 내 인생 세계최초로 만든 인디 게임을 발표하며 ‘세계최초로 음성지원이 되는 한국형 무료 인디 게임’이라고 거창하게 홍보를 했었다. 한국형이면 한국형답게 하다 못해 국내최초라고 스케일을 줄이기라도 하든가, 세계최초는 너무했다. 세계최초라는 단어만큼이나 촌스럽다.

물론 세계최초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시대는 바야흐로 속도 전쟁의 시대로 세계최초로 돌입했다. 같은 일을 해도 누가 하루 먼저 특허를 신청해 세계최초가 되는가가 다분히 중요하다. 기막힌 아이디어를 담은 영화를 발표할 때도,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할 때도, 세계최초가 되지 않으면 그 의미는 반감된다. 세계최초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아이디어나 기술이 제아무리 (다만 속도에서 조금 뒤쳐졌던) 고유한 것이었어도 세계최초의 카피캣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런 세계최초만 기억하는 풍토는 빨리빨리 문화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에서 더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범사회적이고 반복적인 ‘세계최초’ 남발은 병폐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6세기 인도의 시인인 바르트리하리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의견을 세계최초로 내놓았다. 이는 훗날 언어학자인 사피어와 워프에 의해 세계최초로 체계화되는데, 이 바닥에선 제법 유명한 ‘사이퍼-워프 가설’이다. 이 가설의 골자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의 범주가 언어적 표현력의 한계에 국한되며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은 생각 또한 할 수 없다는 건데, 지금이야 망한 가설이지만 이게 세계최초로 등장했을 땐 반박하기 난해한 견고한 가설이었다. 이 가설은 나아가 특정 단어의 반복적인 사용이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 또한 세계최초로 내놓는다. 이 가설이 일부 일리있다고 하면, 한국의 이 끝내주는 세계최초 사랑은 더 심한 경쟁문화를 부추기고 또 당연시하도록 만든다고도 할 수 있다. 어느샌가 남발되고 있는 세계최초는 더 깊은 세계최초 사랑을 야기하고, 세계최초가 되기 위해 더 경쟁하고, 세계최초가 되면 더 떠벌리고, 다시 세계최초를 향한 사랑은 커져만 가고…… 하는 세계최초의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은 당분간 지속될 것처럼 보이므로, 사람들은 앞으로도 세계최초를 갈구할 것이다. 사회도 세계최초를 강요할 것이다. 세계최초라는 이름의 의자가 단 하나뿐인 의자게임은이다. 단 한 사람의 세계최초 승리자를 위해 모든 이들은 너무도 무의미한 스트레스와 불이익을 감내해야 한다. 세계최초가 되지 못한 다른 모든 이들은 단 한 명의 승리자를 더욱 빛나게 해 줄 악세서리로 전락할 뿐이다.

글쎄, 세계최초를 바라보는 나의 이런 관점은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은 분명히 내제되어 있고, 또 매일 세계최초로 뭐가 어쨌다는 뉴스를 보는 게 피곤하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세계최초로 ‘세계최초란 단어 사용 줄이기’ 캠페인 같은 걸 해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다. 그런 캠페인 자체가 우습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무감각해져 버린 한국의 ‘세계최초병’을 일깨울 필요성은 있지 않을까? 기업이 자기네들 홍보를 위해 ‘우리가 세계최초로 무엇무엇을 했습니다!’라고 자랑하는 건 그러고 싶을테니 알았다고 치고, 하다못해 기자들이라도 허구한 날 ‘세계최초’라고 치켜세우지는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 놈의 세계최초다, 정말.

이 쯤 되었으면 당연히 깨달았겠지만, 이 글은 아마도 세계최초로 모든 문장에 ‘세계최초’란 단어가 들어간 글이다.

One thought on “세계최초병에 걸린 나라.

  1. 즈올
    05/11/2018 at 10:37

    글이 위트가 있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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