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점프 선수, 박규림.

1. 박규림. 열 여덟살의 스키점프 선수다. 그리고 국내 첫 여자 스키점프 선수다.

2. 어느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었다. 스키 점프가 무섭지 않느냐고. 무섭죠. 그녀가 대답했다. 수백, 수천번 뛴 점프지만 지금도 점프대 위에만 서면 무서워요.

3. 프리스타일 스키가 취미인 사람으로서, 그 두려움을 나도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 물론 나야 그런 까마득한 스키점프대에 오르지 않는다. 기껏해야 슬로프 한 켠에 마련된 파크에서 쬐끄만 킥(점프대)이나 앙증맞은 레일(난간)과 씨름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알고 있다. 제아무리 작고 쉬워보이는 킥이라도, 막상 그 위를 달리는 순간에는 무섭다.

4. 익스트림 스포츠란 게 전부 그렇겠지만, 두려움을 극복하는 게 가장 어렵다. 예컨대 스키를 타고 점프대를 탔으면, 공중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 설면에 수직으로 안정적인 착지를 할 수 있다. 공중에 뜨는 순간 난 미친놈이다 복창하고 온 몸을 앞으로 내던져야 한다. 그 순간 믿을 건 오로지 스키와 헬멧 뿐이다. 나도 나를 못 믿는다.

5. 그걸 머리로는 완벽하게 알고 있지만 공중에 떠 있는 그 2초 남짓한 시간에는 두려움에 몸이 뒤로 움츠러들고마는 것이다. 이내 넘어진다. 인간은 위험을 감지하면 본능적으로 뒤로 나자빠지기 마련. 스키 점프는 그 본능을 억누르고 반대로 행동해야만 성공적으로 착지할 수 있는, 어찌 보면 참으로 부자연스러운 행위다.

6. 웃기는 점은, 이게 리프트 타고 올라가면서 아래로 킥을 내려다보면 별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왠지 이번에야말로 야무지게 성공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는다. 그러나 막상 킥을 차는 순간 나는 다시 쫄보가 된다. 아니나 다를까 두려움과의 싸움이 2초간 펼쳐진다. 그래서 실패하면 오기가 드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하면 짜릿한 것이다.

7. 박규림. 열 여덟살의 스키점프 선수다. 자력으로 예선을 뚫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메달을 기대할 정도의 실력은 아닌 그저 그런 선수다. 본인이 메달권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두려움을 안고서, 그녀는 아마 지금도 스키를 짊어지고 점프대를 오르고 있을 것이다.

8. 박규림. 그런 선수가 있다. 아마도 올림픽이 끝나면 그녀는 잊혀질 것이다. 앞으로도 스키점프라면 박규림이라는 이름보다는 국가대표라는 영화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하기로 한다. 두려움을 잊은 그녀가 아니라, 두려움에 맞서는 그녀이기에, 그녀를 존경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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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스키점프 선수, 박규림.

  1. 김주영
    15/01/2018 at 08:48

    오랜만에 쓰셨네요.

    1. 16/01/2018 at 11:07

      오랜만에 썼습니다. 쓰려고 마음먹고 쓴 것도 아니고 그냥 쪽글 쓰다가 어쩌다보니 생각보다 길어져서… 거진 1년만에 써서 부끄러워서 몰래 올렸는데 알아채서 댓글도 달아 주시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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