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아우어커피.

야. 서울에 스타벅스 매장이 몇 개 있는지 알아?

기껏 만나도 스타벅스에 앉아 스마트폰 스크린만 들여다보던 A가 참 간만에 물었다.

몰라. 한 2천개?

2천개는 무슨. 284개래.

284개. 생각보단 적었다. 강남역에서는 열 걸음마다 초록색 인어가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데, 그런 추세라면 2천개는커녕 20만개는 될 것만 같았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강남역은 말하자면 초록색 인어의 최전선 식민지였다. 그곳을 벗어나면 인류는 초록색 인어의 지배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다.

사실 A와 굳이 스타벅스에서 만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강남역에는 온갖 프랜차이즈 카페가─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열 걸음마다 하나 꼴로 있다. 스타벅스의 커피향이 다른 카페에 비해 월등히 감미롭거나 값이 확연히 저렴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스타벅스는 그 수많은 프랜차이즈 중에서도 가장 붐비고, 그런 주제에 밤 11시에는 문을 닫는 아주 오만한 가게다. 굳이 스타벅스일 이유는 정말이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홀린 듯이 스타벅스에 들어간다. 초록색 인어 때문일까? 그 인어가 보통 인어가 아니라 뱃사람을 홀리는 세이렌이라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래, 저 요망한 인어가 나를 홀린 게 틀림 없다. 그녀의 묘한 미소는 사실은 나를 향한 비웃음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스타벅스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염증이 샘솟았다.

야, 나가자. 다른 데 가자.

내가 말했다. 어차피 아메리카노는 이미 다 마시고 얼음까지 녹아 애꿎은 초록색 빨대만 염소처럼 씹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나간다고 아까울 것도 없다.

그래. 나가자.

나의 뜬금없는 제안에 A는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A도 스타벅스에 갑작스런 염증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도 없이 스타벅스에 들어온 건 정말이지 멍청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회사에 도착해 같은 책상에 앉아 같은 일을 하는 것도 모자라 주말에는 같은 카페에서 같은 메뉴를 시키고 앉아 있었다니. 하마터면 내 인생이 송두리째 초록색 인어에게 잡아 먹힐 뻔 했다. 그런데 그럼 어디로 가지? 확실한 건 또다른 프랜차이즈는 아니었다. 같은 이름의 가게가 2개 이상 있으면 탈락이다. 새롭고 유니크한 가게를 찾아 우리는 무작정 걸었다. 문득 멀리 커다란 주황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우어커피_(26)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Our Coffee」

주황색? 적어도 내가 아는 프랜차이즈 중에서는 주황색을 컨셉으로 잡은 곳은 없었다. 큼지막한 주황색 간판이 너무 눈에 띄는게 아쉬웠지만 강남역에서 이만하면 충분히 비밀기지같은 곳이다. 게다가 프랜차이즈하고는 확실히 달랐다. 일단 대로변이 아니라 골목에 있었다. 심지어 1층이 아니라 2층에 있었는데, 올라가려면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만 했다. 문은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문이 아니라 방사선 실험실에서나 쓸 법한 철문이었다. 그런 고난을 이겨낸 끝에야 우리는 아우어 커피에 다다를 수 있다. 나는 그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겪을 수 없는 불친절함에 오히려 묘한 매력을 느꼈다. 게다가 그 불친절함때문인지, 매장은 텅 비어있었다. 확실히 요망한 초록색 인어가 지배하는 곳과는 전혀 달랐다. 이곳은 마치, 주황빛으로 빛나는 머리결의 인어공주 아리엘을 연상케했다. 그녀는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바닷속에서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아 나의 운명적인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바로 여기야.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런 카페를 찾으려는 거였어. 이곳이야말로 ‘우리들의our’ 카페야. 아주 만족스러워. 이제야 비로소 A도 나도 일상에서 벗어나 비밀스럽고도 남다른 카페에서 스마트폰 스크린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거야.

커피는 아찔했고 브라우니는 치명적이었다. 우선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나는 나의 콜롬버스적인 발견에 대해 덧붙였다. 이곳을 찾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브라우니가 얼마나 근사한지. BGM이 얼마나 세련됐고 또 인테리어가 얼마나 편안한지. 그리고 무엇보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 아인슈페너 한 모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러나 아우어 커피의 비밀은 오래 지켜지지 못했다. 얼마가지 않아 그 무거운 철문은 쉴 새없이 열리고 닫혔고, 아인슈페너 한 모금을 위해서는 아주 긴 줄을 서야만 했다. 아인슈패너는 아우어 커피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은근히 흔한 음료였다. 아우어 커피는 주황색 머릿결의 아리엘 공주처럼 내게 다가왔으나 어느새 내 목을 조르는 마녀가 되어 있었다.

A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것은 내가 슬슬 아우어 커피에 대해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을 후회하던 때였다. 강남역에서 괜찮은 카페를 찾았어. A는 제법 신이 나서 말했다. 그 카페는 말이야, 좀 뒷골목에 있어. 언덕을 꽤 올라가야 하지만 그럭저럭 갈만 해. 어떤 대회에서 입상한 바리스타가 주인이래. 커피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들어가 있는 메뉴가 유명하고, 그리고 글쎄, 커피가 하트모양 잔에 담겨 나온대!

커피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니, 처음 듣는 발상이다. 하트 모양의 잔이라니, 더 처음 듣는 발상이다. 주저없이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번이야말로 스타벅스도, 아우어 커피도 아닌 새롭고 독특한 카페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루틴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 정도의 센스를 가진 카페라면 당연히 인테리어도 예쁠 터. 조명만 괜찮다면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게 생길지도 모른다. 하트모양 잔에 담긴 커피라니, 틀림없이 스타벅스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 날 것이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아 근데 보조배터리 어디에 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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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내용은 픽션입니다. 아우어 커피 아인슈페너 엄청 맛있습니다. 아리엘 공주는 이쁩니다. 하트 모양의 잔과 커피 맛의 상관관계는 증명된 것이 없습니다만 굳이 증명을 시도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One thought on “#스타벅스, #아우어커피.

  1. dd
    13/03/2018 at 06:46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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