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정체성 내지는 존재의 구성에 대하여.

rene

1.
사람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존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인류……까지는 아니고 하여간 철학자들을 괴롭혀 온 문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유명하고 좀 더 현대적인 철학으로 넘어오면 콰인의 ‘존재한다는 것은 변항의 값이 되는 것이다’라는 그 한 줄만으로는 도대체 뭔 소리인지 알 수가 없고 전문을 읽으면 더 알 수가 없는 철학도 있다. 여하튼 존재라는 것은 워낙 의미가 넓고 동시에 애매한 신비로운 존재다. 아 쓰다 보니 내가 뭔 소리를 쓰고 있는지조차 헷갈리네. 그런 존재가 존재다.

2.
나는 철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책상이 왜 실존적으로 책상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그러나 이제 곧 인간복제가 가능해 질 것만 같은 미래로의 문턱에서 ‘내가 복제되면 나는 뭘까’, ‘나를 나로 지탱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은 좀 궁금하다. 이런 류의 질문은 뉴스나 영화에서도 잊을만하면 또 나오는 소재라서, 다들 한번쯤 생각해 봤지 않았나 싶다. 다만 마땅한 대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저마다 적당한 시점에서 결론을 내리거나 생각을 관두는 것이다.

3.
나는 이 질문을 상당히 단순하게 생각한다. 사람은 그 사람의 외모와 기억으로 존재한다. 그 두 요소가 정체성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반대로 그 둘이 완전히 변형되면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4.
외모. 외모는 말하자면 타인으로부터 존재하는 ‘나’다. 사람은 사람을 이름으로 기억하기도 하고, 직함으로 기억하기도 하고, 얼마나 개썅놈이었는지로 기억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외모를 떠올린다. 이름을 듣고 외모를 떠올리고, 명함을 보고 외모를 떠올리고, 개썅놈이라고 욕하며 그 면상을 떠올린다. 하다못해 본 적도 없이 이메일이나 전화통화만 했던 상대더라도 그 이메일의 형상 내지는 전화 속 목소리라는 ‘실존하는 외모’를 기억한다. 그렇기에 외모를 아무도 모르게 싹 바꾸면 그 시점에서 나는 타인의 기억속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내가 된다.

5.
기억. 기억은 말하자면 내가 스스로 품은 ‘나’의 존재다. 여기서 기억이란 좁게는 나를 인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고, 넓게는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 사물, 사회, 개념, 사고, 습관 등등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 어쨌건 나라는 존재는 지속적으로 같은 기억을 보유하기에 ‘테세우스의 배’의 패러독스로부터 자유로운 지속적인 같은 존재일 수 있다. 그러므로 기억은 나의 구성과 정체성을 지켜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6.
이상의 둘이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전부다. 반대로 말하면, 그 둘이 바뀌면 사람의 정체성 내지는 존재는 바뀐다. 외모가 (성형수술이든 전신이식이든 뭐든) 싸그리 바뀌면 이전의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이 (기억상실이든 세뇌든 뭐든) 싸그리 바뀌면 나는 이전의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기에 나는 그것을 이전의 정체성의 말소요 새로운 정채성의 탄생이라고 일컫겠다. 아예 다른 존재가 된 것이다. (설령 기억이 리셋되고 나서도 같은 사람을 알게 되더라도 그것은 연속적이지 않은 기억이므로 의미가 없다. 가령 내가 지금 기억이 리셋되더라도 나는 곧 수지 포스터를 보고 수지에게 반하겠으나, 그 수지는 내가 예전에 알던 수지하고는 다른 수지다.)

7.
한 편, 외모나 기억 둘 중 하나가 소실(또는 변형)되더라도 나머지 하나가 유지된다면 존재는 어떻게든 지속된다. 예컨대 내가 기억상실로 기억이 완전히 소멸되어 언어도 모르는 백지상태가 되더라도 외모가 유지되는 한 나는 나를 기억하는 모두에게 여전히 ‘나’이고, 겁나 처량한 존재가 되었기는 했으나 아무튼 타인에 의해 이전의 정체성은 간신히 유지된다. 반대로 내가 외모를 싹 바꾸고 잠수를 타면 아무도 나를 모르니 나는 타인에게 새로운 존재가 되겠으나, 적어도 나는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있으니 나라는 존재가 내 안에서 바뀔 수는 없다.

8.
죽은 사람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일단 죽은 사람은 기억이 없으므로 존재의 절반은 상실된 셈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떠나간 이를 기억하는 동물이다. 물론 저마다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나는 자살한 나의 친구는 같이 술을 마실 적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가수 김광석은 기타를 들고 웃는 사진으로 기억하고, 만화가 후지코 후지오는 도라에몽이라는 캐릭터로 기억하며, 내가 갓난아이였을 무렵 별세한 할아버지는 비석으로 기억한다. 죽은 이에 대한 기억은 워낙 파편적이고 사람마다 다르기에 그 존재는 무척이나 불안정하고 가변적이지만, 아무튼, 미약하게나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죽음과 존재는 매우 밀접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memory그러니까, 나는, <원피스>의 ‘그 대사’에 상당히 찬성한다.

9.
복제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복제가 세포 하나하나 완벽할 필요는 없다. 타인이 구분할 수 없을 만큼의 외모와, 내가 분간할 수 없을 만큼의 기억이 복제된다면, 존재를 성공적으로 복제했다고 간주해도 좋다. 설령 복제품 안에 뼈와 피가 아니라 카본과 가솔린이 있더라도 정말로 구분할 수 없다면 존재는 복사된 것이 맞다. (물론 그 정도 차이라면 하다못해 X레이를 찍어서라도 곧 구분이 되기는 하겠다.) 나아가 그렇게 성공적으로 복사를 했다면 나라는 존재는 동시에 두 명이 되는데, 서로 다른 기억을 축적하기 시작하면 서로 미세하게 다른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면, 나를 가사상태에 빠트려 복사를 하고 그 복제품도 가사상태에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둘이다. 그러나 둘 중 최소 한 명이 가사상태에서 깨어나 서로 다른, 새로운 기억을 뇌에 새기기 시작하면 존재는 조금씩 달라지며 나라는 존재는 다시 하나가 된다.

10.
이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사람의 정체성이다. 설명이 길었으나 요약하자면 외모와 기억, 그것 뿐이다. 얕고 얄팍한 정의지만 현실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정의라고도 생각한다. 생각보다는 단순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One thought on “사람의 정체성 내지는 존재의 구성에 대하여.

  1. ㅇㅇ
    24/04/2018 at 22:00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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